3.1운동 100년 범국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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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

3.1운동 100년 한일시민 동아시아 평화선언

한일시민은 수천년을 이웃으로 함께 살아 왔고 앞으로도 수천년을 함께 살아가야할 관계이다.
그럼에도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 양국은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한 잘못을 통감한다.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일고 있고, 한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붐이 일고 있다.
양국 간에는 연간 약 1000만 명이 시민이 서로 왕래하고 있으며, 시민 간 교류도 바다를 이루고 있다.
오늘 우리는 3.1 운동 100년을 맞아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시민의 소리와 행동이 없는
한일관계의 한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한일 관계를 시민주도의 관계로 바꾸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며 한일 시민사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우리의 뜻을 밝힌다.

3.1 운동은 가혹한 식민통치에 맞선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은 배타적 폭력적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 제1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세계의 평화적 기운을 타고
조선이 동양평화의 대변자임을 주창하면서 일본이 동양평화의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촉구했다.
세계사적으로도 3.1 운동은 제일차세계대전에 승리한 국가들의 위로부터의 파리강화회의에 맞서 식민지, 반식민지 시민들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아래로부터
풀뿌리 평화운동을 선도적으로 연속적으로 전개한 탈식민지 운동의 전형이며 파리강화회의의 기만과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시민 주도의 평화 운동이었다.
3.1 운동은 동양평화의 원형이자 원점이다.

일본 시민은 100년 전 동양평화를 위해 한국의 시민이 내밀었던 평화의 손을 100년 지난 지금 성큼 내밀어 맞잡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역사적인 평화 국면의 기회를 살리고 확고하게 정착시키고자한다.
일본시민은 한국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 독립과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은 세계 평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국가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가득 축하의 뜻을 전한다.

한일양국은 한일조약으로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65년 체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냉전 전략의 일환이었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배경으로 일본의 “전후 보상 문제“는 어떤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봉인 되어 버렸다.
냉전 종결 후 한국의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1993년의 고노담화, 95년의 무라야마 담화,
98년의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 쉽 선언, 2001년 간 나호도 담화가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한 번도 일본 국회의 결의를 거치거나 관련 입법조치가 실현된 적은 없다.
한국의 식민지 범죄의 피해자들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처음으로”위안부 문제”와 “징용자문제” 등 전후 보상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65년의 청구권협약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입장을 고집하면서 아베수상이 앞장서 한국 측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아직도 “식민지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은 냉전 체재의 유산인 “65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신음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시민사회가 성숙한 지금 시민사회중심의 새로운 한일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한일체제를 위해서는 일본정부가 먼저 2010년 한일지식인 1000인 공동성명에서 주장한 식민지화 과정의 “한국 병합 조약“ 등이
군사적 강압과 폭력으로 이루어졌고 대한제국 황제의 서명을 받지 못한 미완의 조약으로 처음부터 불법무효였다는 지적을 받아 드려야 한다.
이 공동성명에 대해 중국의 역사학자 400명, 구미 지식인 200명의 지지 성명도 있었다 우리는 재차 2010년 “한일지식인 1000인 공동성명”을 지지함을 밝힌다.
이러한 역사인식과 함께 한일 시민사회는 인권존중을 기저로 진화해 나아기를 제안한다.

국제사회는 나치 독일과 일본군국주의에 의한 대규모 인권침해의 경험을 기초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선포 하게 되었고, 국제인권보장 체제를 구축하였다.
우리는 위안부문제, 징용자 문제 등의 현안도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성실이 피해자의 입장에 따르면 해결의 길이 열린다고 확신 한다.
식민지 지배에 의하여 수많은 고통을 받았음에도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은 해방 후 모국과 일본사이의 다리역할을 하며 공생사회 실현에 공헌해 왔다.

한일 시민사회의 원점은 헌법에 있다.
한국은 헌법전문에 “3.1운동정신“과 이승만 정권을 쓰러뜨린 4,19민주운동을 기반으로 “민주공화제를 지향 한다”고 쓰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독제정치에 대한 저항이 현대 한국의 기반이다.
반면 일본은 헌법전문에 “ 정부의 행위에 의하여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결의하고” 라고 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식민지 지배를 마주하는 것이 전후의 출발점 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경험과 일본 전후의 출발점은 표리일체의 관계이다.
또한 일본과 한국 두 헌법의 이념은 보편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국제인권법과도 통한다.
또한 3.1운동의 이념은 양국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공명하는 역사적 원점이며 동아시아 평화 정신의 기초임을 확인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평화는 전쟁과 억압의 희생자 특히 핵으로 인한 피해자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도와 보장을 확립하는 것이 기본이다.
원폭의 참화를 체험하고 평화헌법을 갖게 된 일본은 동아시아의 비핵 평화를 주도해야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
일본의 비핵지대화, 몽골의 비핵지대화 (2000년 발효)에 이어 남북한의 비핵지대화가 실현된다면 중국 러시아의 동북아지역 비핵지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그리고 97년에 발효한 동남아시아의 비핵무기조약과 연동하여 동아시아의 비핵무기지대화로 나아 갈 수 있다.
일본 헌법 9조의 국제화를 진척시켜 “핵 없는 세상“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일심동체로 “전쟁 할 수 있는 나라“ 가되기 위하여 개헌을 소리 높여 거론하고 있으며 전후의 출발점이 부정되어 가고 있다.
전쟁 방기와 전력 불보지를 규정한 일본의 헌법9조는 “무력에 의한 평화”보다 더 확실한 현실적인 안전보장책이다.
만일 평화헌법의 개악이 이루어지는 경우 동아세아는 군비확산의 악순환과 핵무기가 확산되는 지역으로 그리고 적대적 공생과 낡은 체제의 온존이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아세아 국가 간 그리고 정부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한 해결을 기대 하지만 그것에 맞겨 둘 수만은 없다.
거대권력이 거대자본과 정부의 영향 하에 있는 미디어와 결탁하여 “적 만들기”로 민족주의를 조성하여 권력의 뜻에 시민이 따르도록
강제하는 역류현상이 세계를 석권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간에는 적대적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수구적 정치기반이 강화되고 있다.

아베정권은 아시아에서 2000만인 일본국내에서 310만인의 목숨을 뻿은 군국주의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미화하고,
소위 수정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 개악을 시도하는 등 일본 국민을 역사, 영토, 안보 분야에서 민족주의의 포로로 만들고 있다.
일본의 수구세력들은 “적 만들기”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상대편 악마 만들기”에 열중하여 일본을 증오 발언의 대국으로 만들고 있다.

동아시아는 고도성장의 결과로 약 14억의 중산층과 16억의 스마트 시민이 형성되었다.
그들이 “깨어있는 시민”으로 이웃 나라 시민과 “친구 만들기”를 확대 심화시켜 나간다면 시민아시아가 열릴 수 있다.
정부 부문과 시민 부문의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 시민 아시아의 플렛 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3.1 운동은 시민이 직접 주도하고 참여한 평화혁명이다. 최근의 촛불혁명도 동일하다.
민족자결주의와 국제연맹 창립에 영향을 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시민이 투표로 대표를 뽑아 정부를 구성하면 정부가 평화외교로 평화를 실현하는 간접적인 평화론이다.
유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베를린 장벽을 깨트린 것은 “우리들이 바로 그 국민이다 (”Wir sind das Volk”) 고 외치며 떨쳐 일어난 동독시민의 직접봉기였다.
한국의 촛불혁명도 시민의 직접참여를 통해 북한과 한국의 대결구도를 바꾸고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화해시대의 물꼬를 열었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한국의 단체와 일본의 “9조의 회” “총행동실행위원회” 등 전후 보상 문제, 반핵과 탈핵발전소 등을 추진하는 단체의 연대가 진행되어 왔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행동하는 평화운동의 경험과 연대가 쌓이면 이것이 시민 아시아에 도달하는 지름길이 된다.

우리 한일시민은 상호 연대와 공동행동으로 화해와 공생,
그리고 핵 없는 아시아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평화의 플랫폼”의 첫걸음을 내디딜 것을 여기에 공동으로 선언한다.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년 한일시민 동아시아 평화선언 참가자 일동